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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경제 [김영혜 변호사] 상자를 깨면 더 큰 세상이 보인다

조회수 : 4345 공유 : 0 등록일 : 2009-10-22
김영혜 변호사
 

김영혜 변호사를 만난 것은 서초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 사무실 전체가 휴가기간이 썰렁했지만 김 변호사는 휴가 시간임에도 <리더피아> 독자들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주었다. 그는 ‘판사나 변호사나 그저 직업일 뿐인데 많은 분이 멀고 어렵게 생각한다’며 ‘인터뷰를 통해 국민들이 법을 더 가깝게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나누었다.
20년간의 판사생활을 마치고 올해 3월부터 법무법인 ‘오늘’의 대표 변호사로 자리를 옮긴 김영혜 변호사. 변호사로 자리를 옮긴 소감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는 시작됐다.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주된 업무는 크게 변함이 없어요. 당사자들의 갈등상황에 더 밀접하게 관계하며 일하니깐 전보다 더 보람도 있죠. 제가 판사로 사건을 대할 때도 ‘사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밖으로 나와보니깐 억울한 사람이 생각보다 더 많더라고요. 앞으로 더 보람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김 변호사는 수원, 부산, 인천지법을 거쳐 서울중앙지방법원까지 20년간 법관으로서 쉬지 않고 달려왔다. 매일 중형차 트렁크 하나 분량의 소송자료와 씨름하며 세상의 시시비비를 판가름하는 일은 활자와의 싸움이자 체력과의 전쟁이었다.


중견이 되면서 느낀 여성차별


김 변호사는 여성도 당당한 사회의 주인공이자 국가와 사회를 책임지는 조직원인데 아직도 많은 미디어에서는 ‘여성=가정=육아=패션=섹시’로만 부각시키는 것이 불만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지적인 수준도 높을 뿐 아니라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예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이런 현실과 반대로 여성이 패션과 쇼핑에만 몰두하는 모습만 비추고 있어요. 미디어의 세상을 현실로 인식하기 쉬운 학생들에게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에 나오는 여성들처럼 매일 섹시함만 강조하다가는 사회 조직원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준비하지 못합니다. ”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85년 사법고시 합격자 300명 중에 여자는 단 6명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2%에 불과하다. 그 6명 중 한 명이 바로 김영혜 변호사였다. 2008년 여성 합격자가 38%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사법고시에 여성 합격자가 6명이나 탄생됐다며 ‘여성이 대거 몰려온다’는 제목으로 크게 기사화됐다.
“제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법고시를 보는 것에 대한 망설임은 없었어요. 원래 꿈은 외교관이었는데 법대를 가는 바람에 바꿨어요. 법이 굉장히 실용적이면서 현실 세계와 깊이 관련되어 있어 공부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판사가 된 후에도 법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 자체가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초창기에는 여성 판사가 적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이 여성 판사의 전형이 되는 것 같아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법원은 다른 조직에 비해 인격적이고 서로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강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느낄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견이 되면서 정책결정이나 법원 운영과 같은 중요 직책이 남성에게로 몰리는 것을 보며 법원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김 변호사는 1995년 스탠퍼드대학 법원 연수를 통해 ‘세계여성법관회의(IAWJ)’라는 국제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세계여성법관회의는 여성판사들이 여성권리신장과 인권에 대한 노력을 사법 분야에서 추구하는 국제기구다. 2년마다 대회를 열어서 여성 인권을 논하고 전 세계 여성법관들의 우의를 다진다. 현재 전 세계 87개국 4천여 명의 여성 법관이 등록되어 있다.
“남녀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 관련범죄가 그렇죠. 그러나 여판사는 소수이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세계여성법관회의는 이처럼 세계의 많은 여판사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와 해결 방안을 나눕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여권이 약해 억울한 일이 많은 개발도상국의 여성에게 법률적인 도움을 주고 그곳의 많은 여성들에게 법률과 리더십 교육 등을 하고 있습니다.”


법원부터 양성평등 실현하자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인 사이언 엘리어스는 “법관은 법치주의의 근본인 ‘양성평등’과 ‘다양성 존중’을 판결에서뿐 아니라 법원 자체 구성에서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은 ‘기본적 인권’이라는 근본 가치에 따라 사건을 파악하고 재판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기본적 인권존중에 역행하는 구습이 있고 사법부는 그러한 구습이나 편견을 찾아 제거해야 할 임무가 있다. 여성은 그동안 소수자 처지에 있었던 경험으로 사회의 주류인 남성에 비해 사회적 편견과 오해, 소수자의 불이익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여성 법관의 활동이 늘어날수록 소수자의 인권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김 변호사는 국제기구에서의 활동을 통해 한국 사법부의 국제화를 이끄는 한편, 한국의 판사들이 국제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도록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판사로 재직하면 일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공직이기 때문에 다른 활동들에 대한 제약이 많다. 김 변호사는 결국 판사를 내려놓는 과감한 결정을 하고 올해 3월부터 변호사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
“자유로워지니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어요. 우선은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구체적인 준비와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계기로 많은 중·고등 학생들까지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를 꿈꾸지만 정보 부족으로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미약하지만 제가 아는 노하우라도 기록해 후배들이 제가 겪은 어려움은 겪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국제기구에서 새로운 가능성 열다


김 변호사는 2006년 5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여성법관회의에서 호주제 폐지와 부성(父性) 강제주의 위헌에 대한 ‘딸들의 반란’이라는 명연설로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이사에 선출됐다. 한국이 세계여성법관회의에 가입한지 3개월 만의 일이자 아시아 지역 이사 3선에 도전한 대만 법관을 큰 표차로 따돌리며 이룬 성과라 의미가 더욱 컸다.
김 변호사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에 2010년 세계여성법관회의 한국 개최를 이끌어냈고, 2008년에는 동양인으론 처음으로 세계여성법관회의 부회장에 임명됐다.
“제가 이른 시일 안에 두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제게 놓인 기회를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제게 발표 기회를 줬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연설문을 줄줄 읽기보다 사람들이 주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주위의 여판사들에게 도움받는 것은 물론이고 백지연 앵커에게 스피치 강습을 받으며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연습한 덕분인지 회의에서 제 연설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더라고요.”
연설에 대한 호응이 생각보다 높자 같이 간 후배 판사가 그에게 이사 후보로 나갈 것을 권했다. 김 변호사는 2010년에 열리는 ‘세계여성법관회의’의 한국 개최할 것에만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사 선임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이사직에 도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매년 단 2명이 회의에 참여하는 데 불과했던 한국의 위상을 김 변호사가 바꿔놓은 것이다
“제가 이사가 되고 부회장이 됐다는 사실보다 한국의 여판사들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 더 기뻤습니다. 시작이 반이잖아요.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후배들이 더 다양한 국제기구에 문을 두드리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큽니다.”


IAWJ회의로 한국 위상 높인다


김 변호사는 세계여성법관회의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너무 제한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OECD회원국인 것을 자랑하면서도 우리나라가 그에 걸맞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일에만 관심이 많아요. 그러나 국제회의에 가니 외국 여성법관들이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미국과 아프리카 지역의 법관들은 다양한 국제 이슈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영어 발음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국제회의에 가서도 구경만 하다 오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영어 발음은 절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인도, 아프리카, 동구라파 사람들 모두 영어 발음 달라요.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토론해요. 작은 것에 연연해 하지 말고 자신의 관심분야에 관해 대화를 이끌고 자신의 견해를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김 변호사는 내부적으로 한국의 사법부가 세계적인 이슈와 인권, 양성 평등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외부적으로는 한국의 재판 제도가 얼마나 선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내년 5월에 열릴 회의를 위해 현재 준비위원회를 꾸려 회의주제 선정과 프로그램 구성 등 담당파트를 나눠 온·오프라인 상에서 지속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회의를 잘 개최하는 것을 넘어 한국 이미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 변호사는 훌륭한 리더십을 갖추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자기가 속한 분야의 일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잠재적인 리더가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를 해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 떨어진 휴지 외에 멀리 있는 얼룩도 눈에 보이게 마련입니다.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자기분야에서 철저히 전문성을 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변호사는 우리가 너무 큰 것만 바라보느라 작은 것에는 소홀히 대할 때가 너무 많다며 자기가 사는 주변, 내가 속한 직장과 지역사회, 내가 속한 직원 군에 관심을 두고 충실히 할 때 단단한 리더십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과 창출로 인정 받아라


김 변호사 역시 법관으로 일하면서 거시적인 주제보다는 자신의 법정에서 재판 받는 당사자, 인적·물적 관리 등의 법원 살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 부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다양한 이해관계를 포용하면서 이익과 성과를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법부의 독립, 민생 안정 등과 같이 멋있는 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보상감을 주지만 그런 말을 백 번 한다고 해서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들에 대한 세금 폭탄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환호하며 그렇게 환수된 돈이 금방 내게 돌아와 나의 삶이 나아지게 만들어 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나의 삶은 나아지고 있는가.
“많은 리더들이 명분싸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예산 늘리기에 혈안이 되기보다 지금 있는 예산을 어떻게 써야 더 좋을지 고민하는 게 더 실용적인 리더십이 아닐까요?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사용하는 건물을 깨끗하고 오래 사용 할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크고 거시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리더피아 독자들에게 ‘조급함을 버리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50년을 살아보니 변화무쌍한 것이 바로 인생인 것 같아요. 생각대로 안 될 때도 있고 평탄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고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월간 <리더피아>에 나오는 많은 리더 역시 그런 반복을 겪으면서 자리매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깐 지금 어떤 자리에 있든, 좌절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자신의 목표를 성실히 좇아가다 보면 리더피아 독자들도 언젠가는 그 리더의 위치에 올라와 있을 거에요. 어느 날 갑자기 영웅이 탄생되는 것이 아니에요. 한 단계, 한 단계 준비하며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두르기보다 차근차근 올라가는 리더가 되시길 바랍니다.”
남이 도전하지 않은 일을 시도하며 세상의 편견을 조금씩 바꿔가는 김영혜 변호사. 변호사로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그녀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 댓글
  • 김*연 kb***** 2017-01-02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멋진분이 많아요 !! 좋은 내용에 글이었습니다.
  • 태*일 em******* 2015-05-04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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